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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예배

창세기12 /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2008-12-20 황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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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창세기 강해 12


서울반석교회/황정길 목사


 


12.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1-8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하게 되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여자로 아내를 삼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을 말하고,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쾌락과 욕망을 위하여 사는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입니다.


경건한 셋의 후손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문화에 동화되어 경건한 자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제 성령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 6:3)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생기, 즉 성령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거두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육신가 됨이라”(창 6: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 곧 생명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이 생기 곧 성령의 생명의 기운을 사람에게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성령이 떠나 영적인 면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짐승이나 다름없는 욕망에 이끌려 육체의 쾌락을 위하여 사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더 잔인하고 탐욕적이고 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들의 날이 일백이십년이라 하시며 일백이십년 후에 홍수로 이 땅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시 땅 위에 네피림이 있었는데 ‘네피림’이란 ‘거인’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12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민 13:33)라는 말씀을 보아서 힘으로 자기의 세력을 삼는 거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당시는 도덕이나 윤리가 통하지 않고 힘을 자랑하며 힘으로 다스리는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지경까지 이른 세상을 바라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래의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난 삶을 살 때 이렇게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에 경건한 한 사람 노아가 있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창 6:9).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했는데 어찌 의인의 삶을 살 수 있었겠습니까?


노아에게도 인간의 죄의 본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노력하였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고 기록한 말씀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노아에게 나타나시어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했습니다”(창 6:22).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히 11:7)라고 증언합니다.


홍수로 세상이 멸망당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고 방주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노아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묵묵히 오랜 세월을 오직 방주를 예비하는데 온힘을 바쳤습니다. 마침내 방주가 완성되자 노아의 식구와 모든 생명을 보전하여 전해야 될 생명들이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노아의 식구가 방주로 들어가고,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고(창 7:10) 했습니다. 이 칠 일 동안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기다림의 기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베드로 사도는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벧후 2:5)라고 말씀합니다. 배를 만드는 노아의 행위 자체가 홍수의 심판을 알리는 소리요, 노아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친척들에게, 이 홍수 심판의 소식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칠일이 지나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십칠 일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창 7:11-12).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구의 지축을 흔들어 지각변동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지구의 축이 기울어졌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보존하고 계시기에 우주가 제 궤도를 순행하고 우리가 안전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과 함께 보존되어야 할 생명들이 방주로 들어가매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구원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뜻이며 또한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듯이 우리의 구원의 문도 닫힐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0-13).


그러므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지금이 곧 은혜의 때요, 지금이 곧 구원의 때입니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문이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은혜 받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예비케 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은 장차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방주는 우리의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과 동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감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는 모든 사람과 모든 생물은 다 홍수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창 7:1)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창 7:7),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창 7:9),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창 7:23)는 말씀에 유의 하여야 합니다.


 


즉 ‘방주로 들어가라’, ‘방주로 들어갔으며’,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하는 말씀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 성경에는 창 7:1에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하고 “들어가라”로 번역이 되었으나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방주로 들어오라”는 번역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방주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라’ 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주로 들어오라고 부르신 하나님이 실낙원 이후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류를 향하여‘오라’고 부르신 것이 성경에 600 번이나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홍수에서 구원받은 것은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이 세대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사실 방주 안에 있는 동물과 방주 밖의 동물의 차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방주 안으로 들어온 것과 들어오지 못한 차이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는 것과 방주 밖에 있다는 차이는 생명과 죽음의 차이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의 차이는 영생과 멸망입니다. 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창 6:1~8

  • 구원론
  • 로마서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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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13 /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
  • 창 9:8~17
  • 황정길 목사
  • 창세기12 /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창 6:1~8
  • 황정길 목사
  • 창세기11 / 셋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 창 5:1~8
  • 황정길 목사
  • 창세기10 /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창 4:25~26
  • 황정길 목사
  • 창세기09 /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창 3:14~15,21
  • 황정길 목사
  • 창세기07 / 죄의 기원과 죄 아래 있는 인간
  • 창 3:1~7
  • 황정길 목사
  •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사람들
  • 고후5:14-15
  • 황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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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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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7:6-11
  • 황정길 목사
  •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라
  • 신6:16-19
  • 황정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