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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예배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2007-12-05 황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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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강의안]

11.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신8:1-3절


신명기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40년간 광야생활을 하였던 것을 회상시키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1-3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이 말씀은 신명기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길만이 그들이 살고 번성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으려면 그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하며 지난 사십 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고 이처럼 역사를 들어 교훈하는 것은 지난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배우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번 지난날의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신32:6-9).

이처럼 역사를 들어서 교훈하는 것은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역사를 통하여 오늘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여 후회 없는 역사를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야 말로 가장 좋은 스승이요 가장 진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역사를 통하여 배우지 아니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게 됩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고 할 때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어떤 사관(史觀)을 가지고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사관은 왕조사관과 민중사관, 황국 사관과 식민사관, 개인주의 사관과 민족주의 사관, 관념론 사관과 유물론 사관, 문명주의 사관 등으로 이런 사관의 공통점은 사람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헬레니즘에 입각한 인본주의 사관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주체를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 보는 신본주의 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인이시며 죄지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가지고 역사를 다스리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관을 신본주의적 구속사관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역사관은 신본주의적 구속 사관이어야 합니다.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역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관이어야 합니다.

이런 신본주의 적 구속사관을 가진 사람만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발견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알아야 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역사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개인의 역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4-28)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17-23)

이 말씀에서 본바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관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섬세하고 오묘한 손길을 보며 성공에도 자만하지 않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2절의 말씀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사십 년의 기간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지 안하는지의 시험 기간이었습니다.

학생이 평소 수업시간에 공부를 잘 하였는지 못하였는지는 시험을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평소에는 알지를 못합니다.

핍박과 고난이 왔을 때 그 때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통과하든지 초원을 통과하든지 역경에나 순경에나 어떤 때든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간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것은 “너를 낮추시게 하려 하심” 이라는 것입니다.

즉 겸손하게 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할 때는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겸손할 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며 인간이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하여 먹을 것이 없는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며 주리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배고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러움 중에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픈 서러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낮추시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통과하게 하시면서 주리게 하심으로 가난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훈련 하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먹을 것을 주시되 매일 매일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거두게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시며 이런 훈련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을 때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말하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떡만을 강조하는 사탄에게 ‘땅의 양식’ 과 ‘하늘의 양식’ ‘육의 양식’ 과 ‘영혼의 양식’ 을 대조시키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육의 양식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요 그보다 더 우선시 하여야 할 중요한 양식은 하늘의 양식이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47-51)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므로 죽지 않고 육신의 생명을 얻은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을 행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영접하는 것’(요1:12) ‘바라보는 것’(요3:14-15) ‘먹는 것’(요한6:53-57)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의 약속을 믿으며 그의 약속을 붙잡고 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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