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되었습니다.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글주소

새 노래의 의미와 참 찬양

  • 전홍강
  • 308
  • 2011-07-15 00:00

찬양회복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19]

 

■ “새 노래”의 의미와 참 찬양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찬양인이 참 찬양을 드리고자 할 때 또 하나 관심과 이해를 자져야 할 문제가 하나님은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노래”로 찬양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면 새 노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 작곡한 노래인가, 다른 목적으로 불려 진 적이 없는 노래인가. 성경 구절과 문맥은 그렇게 오해의 함정에 빠지게 하고 있다.

 

▶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성경구절

하나님은 “새 노래”로 찬양할 것을 원하시고 계시는데, 이와 관련한 구절은 미주에서 보는 바와 같이 9개 정도가 검색되고 있다.[개역개정]1)

이를 영어 성경[NIV]은 “new song”으로 쓰고 있고, 일본어 성경[신개역] 에서는 “新しい歌”, 중국어 성경[번체, 간체]도 “新歌”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을 단순하게 그냥 읽으면 우리말 성경 구절의 문맥을 보거나, 다른 나라 것을 보더라도 “새 노래”를 “새로 지은 노래” 쯤으로 잘 못 알기 십상이다.

 

▶ 나의 “새 노래”에 대한 오해와 방황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새 노래”의 진정한 의미는 그게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그냥 새로 작곡한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진정한 찬양을 드린 적이 없는 꼴이 되고 말지 않는가.

현실적으로 어느 한 주일의 찬양을 위해 정말 새로 작사•작곡한 신곡으로 찬양 노래를 불러 본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반복해서 몇 번씩 부르는 찬양곡도 흔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국에서 수입해서 번역, 출판한 신곡?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원어 국에서 이미 불러졌을 것이기에 이 역시 새 노래가 아닌 “헌 노래”라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반복해서 부르는 “헌 노래”라 할지라도 그 찬양곡(music과 words)의 작곡 동기가 하나님 찬양을 목적으로 지은 것이라면 새 노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은근히 자긍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몇 해 전 성탄절 칸타타였던 모찰트의 “대관식 미사”곡에 대해 그 작곡 동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숭앙키 위한 것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상의 제막식 기념행사 미사”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성탄 축하 찬양곡으로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냥 종교적 음악회나 성가곡으로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새 노래”에 대한 성경주석

성경학자들은 이 “새 노래”를 새롭게 구원받은 백성이 그 새로운 은혜와 체험에 감동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노래로 풀이하고 있다.

 

[1] 박윤선 목사의 주석2)

━새로 구원 받아 새로 지음 받은 자의 새로운 경험과 감격에 의한 새로운 찬송

━새 은혜와 새 세계의 축복을 받은 자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특별찬송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힘입을 때 마다 그 새로운 희열과 감격으로 부르는 노래

[2] 강병도 목사의 주석3)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된 인격이 부르는 노래. 따라서 새 노래는 영원히 새롭게 될 노래이며 결코 낡거나 살아져 버릴 노래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그 구원의 은총을 마음 속 깊이 느낀 후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노래

━구원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가진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로서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는 구별된다.

[3] 인터넷 성경주석자료의 주석4)

새로 지은 노래라는 뜻보다는 날로 새롭게 북받쳐 오르는 노래, 다함없이 늘 새로운 노래

새 노래란 출애굽의 구원 사실 곧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승리를 염두에 둔 표현

━구원에 대한 감사가 그 내용, 새 노래란 새로 지을 노래.

━새 노래란 새로운 시대의 소망과 기쁨을 담은 노래를 가리키는 것일 것.

 

이상의 “새 노래”에 대한 성경주석 내용을 종합해 보면 시간적으로 최근에 지은 노래의 의미는 물론 아니고, 새롭게 죄 사함 받아 구원 받은 백성이 그 새로운 은혜와 체험에 감동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노래로 개념 된다.

 

▶ “새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의 자세

이러한 “새 노래”에 대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인식을 개선하고 찬양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찬양을 드리는 찬양인이 될 수 있을까.

 

[1] “새 노래”의 진정한 의미는 작사•작곡한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찬양곡의 작사•작곡을 하는 사람의 신앙상태와 그 목적 및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옳은 해석이라고 생각되고 적이 안심이 된다. “21C 찬송가” 편찬을 위한 편집회의에서 나운영씨의 것(3곡)에 대해 편입문제로 설왕설래했음도 이에 연유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교회 주변에 얼마나 많은 상업적인 종교음악 내지 성가 곡이 거래되고 있고, 기교적인 명곡이 넘쳐나고 있는가. 이 점은 교회의 예배 찬양곡을 선정하는 위치에 있는 지휘자 등을 크게 각성케 하는 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작사 작곡자의 신앙상태나 동기 및 목적을 가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써 살펴보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기는 하겠으나 상당한 자원이 투입돼야 할 일이므로 이 역시 쉽지 않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 문제는  찬양일선의 하나의 한계로 남지 않는가 한다. 

 

[2]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는 물론 찬양대의 찬양대원에 국한하지 않는다.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그 신분이나 직분에 불구하고 진정한 찬양인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러는 예배당의 찬양대석에 앉아 있는 대원만이 찬양인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호흡이 있는 자”(시150;6)를 비롯하여 “여호와의 종들”(시113;1), “민족들”(시67;3,5) 등등의 기록에서 하나님 찬양의 기회는 온 우주에 두루 주어지고 있다는 소이이다.

 

[3] 찬양 노래를 부를 때마다 구원의 은혜와 그 체험에 감동 감격하여 노래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찬양대원이라 하더라도 구원의 감동이 내재된 노래를 할 수 없다면 참 찬양,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같은 찬양대의 찬양대원이라 하더라도 찬양의 진정성은 다 다를 수밖에 없겠다.

시편에서 지적하고 있는 큰 소리로, 손을 들고, 소고 치며, 춤추며,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라는 말은 바로 “새 노래”를 부르는 자연스런 현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다고 감격하여 가슴이 뜨겁고 몸이 떨려 도저히 안정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해 보라. 흔히 회중의 찬송하는 소리의 크기와 분위기의 느낌으로 그 교회의 부흥정도를 가늠하곤 하는데 일리 있는 말로 생각된다.

 

[4] “새 노래”는 집단의 문제가 아니고 신앙인 개개인 차원의 은혜 표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는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인•나의 문제이지 집단•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교리와 상통한다. 따라서 “찬양대원 모두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찬양”했으면 하는 기도는 구원받은 백성이 갖는 은혜의 감격 정도를 같은 수준으로 맞추자는 것이겠다.

 

[5] 교회를 대표하는 찬양대원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여야 하고 동시에 구원의 감동과 감격으로 감사를 아는 자여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찬양대원 충원을 위한 면담과정에서 관계자 피차간에 진지하게 상담•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세례교인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찬양인으로서의 준비된 자세가 절실하다. “새 노래”를 “공교히”[개역한글]/“아릅답게”[개역개정] 연주(시33;3) 하기 위해 연습시간에 충실할 것은 물론 복장과 예배자세 등에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히12;28) 수 있도록 잘 대비해야 할 것이다.

 

[6] 아무리 잘 만들어진 유명곡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보기 좋게 지휘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원들이 치장을 잘하고 있다 하더라도 “새 노래”로 찬양하지 않는다면 그야 말로 “울리는 꽹과리”(고전13;1)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만하는 죄악에 불과할 것임을 교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를 경계하고 계신다.

    우리가 곧 잘 부르는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날 위해 피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내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하는 노래가 허위와 거짓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7] 현재 교회들에서 수입곡 등 아직 불러 본 적이 없는 곡이 아니면 마치 찬양 곡으로는 부족, 부적절하고 실력 없는 찬양단인 것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는데 이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문제의 원천은 작사•작곡자의 신앙상태에 기반한 목적과 동기에 있고, 다음은 그 곡을 선택하는 자이며, 이어 가사의 내용 등과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8] “새 노래”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특별한 노래”(박윤선)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노래가 있고, 인간생활의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은 그 많은 노래에 영혼을 빼앗기고 탐닉해 있다. 찬양곡은 단연 이들로부터 작사•작곡의 동기에서, 가사에서, 리듬에서, 노래하는 자에서 철저히 “구별”(대상25;1)되고, 찬양하는 자 역시 구원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특별한 노래”여야 할 것이다.

 

[9] 일단 “새 노래”로 지어진 노래는 영원히 새롭게 될 노래이며 결코 낡거나 살아져 버릴 노래가 아니다.(강병도) 옳은 주석이다. 하나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새 노래”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종종 찬양곡 선정과정에서 언젠가 한 번 불렀던 찬양곡 또는 회중이 잘 알고 있는 곡은 낡고 시시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띄워 지는데 이는 잘 못이다. 진정 새 노래로 찬양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족하지, 회중의 호응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아니라 할 것이다. 우리의 찬양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 이지 않는가.

 

▶ 언제나 새롭게 “새 노래”를 부르자

정말 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늘 새롭게 감격하여, 새 노래로 참된찬양을 드리고 있는가, 항상 자문해 보고 가다듬어야 하겠다. 이 길이 찬양 회복과 정착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이를 성취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교회조직(노회, 총회), 신학교, 개 교회, 국내 작사•작곡자, 곡 수입•번역자, 출판사, 지휘자, 찬양대원 모두의 함의(含意) 있는 진지한 노력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찬양대가 새 노래로 언제나 새로운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란다.JHK110715

 

 -------------------------------------------------------

1)━(시편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 할 지어다

━(시편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편 96: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 할 지어다

━(시편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편 144: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 이다

━(시편 149:1)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 할 지어다

━(이사야 42: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요한계시록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요한계시록 14: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2)

박윤선, 성격주석 시편, 성문사, 1959.

3) 강병도, QA시스템 성경연구시리즈(6) 시편, 기독지혜사, 1991

4) www.heedae2.pe.kr/juseok.html의(2011.7.14)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안녕하세요. 길 원격평생교육원입니다 ^^

2012-03-28 97

2012-03-28 97
   ♡..ㅡ 당신만은 못해요

2012-04-04 183

2012-04-04 183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의 기도

2012-03-30 134

2012-03-30 134
   &quot; 의로운 죽음 고 이 인호 집사님&quot; ㅠㅠ !

2012-03-30 133

2012-03-30 133
   은혜와 믿음을 댓글로 내 이웃을 포옹합시다.

2012-03-03 128

2012-03-03 128
   사랑부가 뭐야?

2012-02-27 214

2012-02-27 214
   책을 읽다 좋은 글 있어 올려봅니다.

2012-05-16 184

2012-05-16 184
   호산나를 떠나며...

2012-02-13 160

2012-02-13 160
   명지대 사회교육원 [선교무용 지도자 과정] 모집 안내

2012-03-13 98

2012-03-13 98
   회개

2012-02-06 164

2012-02-06 164
   ♡...무엇이든 최고가 되라...♡ -더글러스멜로크-...♡

2012-06-25 280

2012-06-25 280
   12월 성경쓰기 명예의 전당에 오르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2011-12-25 280

2011-12-25 280
   신임 호산나찬양대 지휘자님께 드리는 공개서한

2011-12-22 416

2011-12-22 416
   새 노래의 의미와 참 찬양

2011-07-15 309

2011-07-15 309
   [작품사진]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산 (잠간 쉬어가세요)

2011-09-21 104

2011-09-21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