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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목사 설교

수요 예배

창세기09 /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008-11-15 황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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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14-15, 21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아담에게는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물으시고, 하와에게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창 3:13)물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변명으로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회개란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며 용서란 기회를 허락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함을 받았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기회를 허락 받았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뱀에게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하고 저주했습니다.


 


여기서 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뱀을 이용한 사탄을 뜻합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9). 또 하나는 사탄에게 이용당하여 사탄의 도구가 된 뱀을 말합니다. 이때부터 사탄의 도구가 된 뱀은 배로 다니기 때문에 입으로 흙이 들어가는 가장 낮은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창세기에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에 싸움이 나오고,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끝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말씀을 보아 인류의 역사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투쟁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탄의 조종을 받은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투쟁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승리가 선언되었고, 사탄이 불 못에 던져짐으로 사탄과의 싸움은 끝이 나며 만물이 회복됩니다.


 


그러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지칭하고 있습니까? 뱀의 후손은 사탄과 사탄의 뜻과 계획에 동조하여 사탄의 도구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 침입하여 하와를 유혹하여 인류의 시조 아담을 타락하게 한 후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나타나서 시험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있다가(눅 4:13) 사람들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계속하여 사람에게 접근하여 사람을 미혹하여 자기의 종으로 삼아 사탄의 왕국을 확장하여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 24절에서 30절까지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입니다. 그 사탄은 지금도 불순종 하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여자의 ‘후손’은 집합적 개념과 단수적 개념이 있습니다. 집합적 개념이란 셋의 후손을 통하여 나타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뜻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언약 백성이 타락하였을 때는 남은 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 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 10:20-23).


신약시대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2-3).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자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뜻합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단수적 개념으로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그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므로 아담이 그 후손에게 물려준 모든 죄의 형벌과 오염을 면하게 하시고 깨끗이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합니까?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한 육을 입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담도 육을 입어야 했기에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즉 둘째 아담은 반드시 여자의 후손으로 육을 입고 오셔야 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즉 육신을 입고 사망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님이 여자의 몸을 통하여 육신을 입고 오셔서 사망 아래 놓였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1-22).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를 향하여 “여자여”(요 19:26)라고 하신 것은 깊이 생각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창세기 3:15에서 예고된 사탄과의 싸움을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다 이루었다”(요 19:30)하심으로 이 모든 싸움이 끝났음을 선언하신 것이며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지상의 성도들은 아직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는 말씀을 보아서 지상의 성도들은 아직도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하는 말씀을 보아 죄를 범한 인간은 자기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죽옷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기 위하여 어린 양이 대신 희생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리기 위하여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하는 말씀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이제 막혔다는 뜻입니다. 그룹이란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하나님의 수호천사입니다. 두루 도는 불 칼이란 아마 에덴동산 주위를 계속 천둥 번개가 치며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 19:16)는 말씀을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인류는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마 27:51).


이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는 것이고 그룹들로 수놓은 것입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서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출 26:31-33).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그룹이 지키고 있는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천상의 낙원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실락원이 복락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오셔서 우리의 손목을 잡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예복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이 의의 옷을 입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창 3:14~15,21